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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식

한국 외환위기 (나무위키 참조) - 1편

by cchucchu 2021.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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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포스팅하고자 했던 주제인 한국의 외환위기입니다.
한국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듯이 1997년에 일어나 IMF 전후로 나눠질 만큼 분위기를 바꾸었던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이지않을까 생각됩니다.
(텍스트는 그대로 가져오고 일부 부분을 수정하였습니다.)

https://namu.wiki/w/1997%EB%85%84%20%EC%99%B8%ED%99%98%20%EC%9C%84%EA%B8%B0

 

 

출처 : https://namu.wiki/w/1997%EB%85%84%20%EC%99%B8%ED%99%98%20%EC%9C%84%EA%B8%B0
출처 : https://namu.wiki/w/1997%EB%85%84%20%EC%99%B8%ED%99%98%20%EC%9C%84%EA%B8%B0

https://youtu.be/W3bFU1aSKy0

출처 : KBS News

https://youtu.be/XmPiH3nE15c

출처 : 엠빅뉴스

(+) 대한민국의 IMF 관리체제 기간 : 1997년 12월 03일 ~ 2001년 08월 23일

 

1. 개요

1997년부터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외환 유동성 위기를 통칭하는 말.

외환 위기 사태 발생 직전까지, 김영삼 정부의 금융 정책으로 인해 각 기업들은 무분별한 차입에 의존하며 무분별한 과잉투자를 벌였다. 동시에 국외적으로는 태국의 고정환율제 포기로 인해 환율을 이용한 외국 자본의 차익 실현으로 동남아시아에 통화 위기가 발생하였고, 동북아시아를 거쳐 세계 경제에 불안을 가져왔다. 이러한 경제 불안은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

이를 1997 아시아 금융 위기(1997 Asia Financial Crisis)으로 불리우며, 인도네시아와 태국은 위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였고, 한국은 단순 지표상으로 앞의 두 국가보다는 덜했으나 역시 엄청난 위기를 겪었다. 홍콩,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도 침체에 시달렸다. 브루나이, 중국,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또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영향을 덜 받았다. 일본은 이미 침체에 들어가 있었기에 영향은 아주 크지 않았지만 1995년을 기점으로 점차 회복세에 접어든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소비세를 5%로 인상하면서 소비 심리가 급속히 위축되었고, 금융회사들도 잇따라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확 꺾여버리고 말았다.

결국, 일본은 1998년도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잃어버린 10년 초-중기 기간 동안 미약하게 증가했던 실질 임금과 가처분 소득도 1997년에 고점을 찍고 하락세로 들어서게 하는 경기 침체를 연장하는 요소를 겪게 되었다.

따라서, 이 금융 위기는 경기 불황에서 다시 일어서려던 일본을 끌어내리는 데 한 몫했다.는 점에서 여파가 작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아시아 금융위기 속에서 무분별한 차입으로 의존하던 국내기업의 외국자본 단기부채 만료와 아시아 경제에 불안감을 느낀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이 발생하면서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게 되었고, 충격을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기업의 파산이나 부도, 대량 실직이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경제 위기로 인하여 단기부채의 연장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상환을 독촉받았다. 한국은 이러한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였는데, 해당 문서는 이를 상환한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IMF는 1997년 말에 발생하여 2001년 8월까지 약 4년간 지속되었으며, 이후에도 'IMF 사태 이후로 힘든 시기'나 'IMF보다 힘든 시기'같은 표현으로 경제적 고난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자리잡게 된다.

외환 위기 직전이 호황으로 여겨졌지만, 위기 조짐은 전년인 1996년도부터 보였다. 1996년도의 경제성장률이 1995년도의 9.6%에서 7.6%로 떨어졌던 것이 그 단초였고, 언론에서는 경기 침체를 잇따라 보도하고 있었다. 즉, 이미 그 전부터 불황 조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사실, 당대에도 경제성장률 7% 정도면 전혀 낮지 않은 평균 정도는 되는 수준이었기에, 경기 침체로 경고했던 언론의 부채질은 호들갑 수준이라고 봐도 되었다. 1994년과 1995년도의 경제성장률이 9%대를 잇따라 기록할 정도로 활황이었기에 성장률이 떨어진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8] 문제는 이번에는 성장률 감소가 수출액 감소, 대외 채무 폭증 등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들은 구조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았고, 결국 외환 위기를 초래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과 은행마저도 나날이 무너지며, 대규모 실업 - 대량의 부동산 매각 - 금융불안 등이 일어나게 되었고, 외환 위기 상황으로 확실화된 이후에야 IMF의 계획에 따라 전방위적인 경제적 체질 개선과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실행되었다.

이는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경제위기 사태이다. 대한민국의 GDP와 1인당 GDP는 사태 직전까지 감소한 적이 없었으며, 국가에서 경제위기 상황을 인정한 적도 없었다. 오일 쇼크때 잠시 경제가 안 좋아진 적이 있었지만, 경제에 심한 타격은 주지 않았다. 그래서 1997년 외환위기 사태는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며, 진짜 경제위기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경제위기"하면 이 때의 모습을 많이 떠올린다. 또한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믿음도 완전히 바꿔 놓았는데, 한 예로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도 사실 외환위기 이전의 경직된 노동시장에서나 통했던 말이 되었을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 구조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용 시장이 불안정해진 이래 대한민국 사회는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2. 당시상황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ECOS에 나와있는 외환위기 시절 경제성장률 지출 부문. 정부지출은 빠져있다. 참고로 이것은 표에도 나와있지만 전년 대비가 아니라 전기 대비다. 기업 설비투자는 1997년 2분기 대비 1998년 2분기, 즉 1년 연간 대비로 하면 -47.3%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국민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에서 비슷한 기사를 냈다. (3월 8일자 조선일보 기사는 단독 인터뷰였으므로 타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다.)

단, 인터넷 커뮤니티들에는 위와 같은 기사 캡쳐들이 마치 한국 언론사들이 외환위기 직전까지도 한국은 안전하다고 선동을 했다는 식으로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저 기사는 IMF 총재와 IMF측 인터뷰를 그대로 보도한 것일 뿐이며 언론사들이 선동한 것이 아니다. 1997년 9월경 IMF뿐만 아니라 BIS, OECD, 세계은행 등의 수장들이 불과 며칠 사이에 동일한 취지의 발언을 하였고, 역시 다수의 언론에 의하여 보도되었다. 특정 의도를 가지고 듣보 인물을 전문가랍시고 인터뷰해서 보도하는 것도 아니고 IMF나 세계은행 등이 그렇다는데 그 내용을 보도를 안하는게 더 이상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 언론사(들)의 농간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조선일보도 외환 위기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기사를 다수 보도한 바 있고(# # #) 1997년 당시 기사들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그해 동안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외환위기 위험을 우려하는 보도들을 수두룩하게 냈다.


이 모든 뉴스가 불과 2년 만에 일어난 것이다. 출처는 1997년과 1998년의 MBC 뉴스데스크. 출연자는 당시 평일 앵커인 이인용/김지은-정혜정, 주말 앵커인 권재홍/최율미. 단 대우그룹 부도는 1999년이다. 그 밖에 위의 스크린샷에서 언급된 기업들 가운데 일부는 외환위기 이후에 회생되었거나 부도를 당하지 않은 다른 기업에게 넘어가 이름까지 바뀌기도 하였다.

경제를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저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는 쉽게 알 것이다. 저 사진에 나온 딜러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 준다. 혹시 환율이 높으니 수출하기 좋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기업들이 도산하던 시점이라 수출할 물건이 그리 많지 않았고 많은 외채로 인해 많은 달러가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팔 물건이 없는데 환율 높아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이 덕분에 경제가 차츰 회복되기 시작했을때쯤인 1998,1999년도에 수출경쟁력이 급상승하여 수출액이 반등할수있었다.




3. 경과


정확히 말하면 외채 상환은 해야 하는데, 당장 갚을 외화는(달러$) 없어서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문민정부가 IMF에다 "돈 좀 빌려주세요. 곧 갚을게요."라고 요청한 사건이다. 2008년 그리스 경제위기 같은 사건 수준의 엄청난 재난이다. 그냥 돈을 빌려주고 제때 이자를 쳐서 받으면 그만인데, 돈을 빌려주는 대신 명령대로 나라 경제 운영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IMF가 비판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 즉, 외환 위기 사태 발생 전이었던 대한민국이 OECD에 가입한 1996년까지의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불리던 시절을 누렸다고 했다. 그러나 1996년의 무역 적자는 무려 230억 달러에 달하며 외채는 천억 달러를 뛰어넘는 등, 이미 대내외적으로 장기적인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상당수의 한국 경제학자들은 잃어버린 10년을 겪던 일본을 능가할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에 급급했다. 즉,현실 인식을 완전히 반대로 했다. 불과 몇년전 일본에서도 곧 있으면 미국을 능가할것이라며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결국 외환 보유액 부족과 여러 가지 경제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한 것이 발목을 잡게 되면서 이후의, 그리고 현재까지의 대한민국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 이렇게 한국의 IMF가 일어나는 전반적인 배경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뉴스에서 각종 회사들의 부도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부분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해주는 것만 같네요 😂

나머지 부분은 2편에 이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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