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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식

미국의 경제위기 (나무위키 참조)

by cchucchu 2021.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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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특히 리만브라더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금융경제위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 경제 얘기를 하면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내용이 그렇게 길지는 않으므로 1편으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원본 텍스트는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yeongman94&logNo=220430738893 - 출처

https://namu.wiki/w/%EB%8C%80%EC%B9%A8%EC%B2%B4?from=%EC%84%B8%EA%B3%84%EA%B8%88%EC%9C%B5%EC%9C%84%EA%B8%B0

 

1. 개요

2007년 4월(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또는 2008년 9월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규모의 경제 위기.

그래도 동아시아, 특히 대한민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같이 그나마 좀 사는 동네는 중국 무역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고로 이번 위기로부터 입은 피해는 진원지인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훨씬 나은 편에 속한다.

다행인 점은, 2014년에 와서는 미국과 유럽 등의 경기가 조금이나마 회복되면서 극복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단기와 장기의 구분은 극히 상대적인 개념이라 일률적으로 적용되긴 어려우나 밀튼 프리드먼이 '실증분석에 따르면 보통 단기는 5년 이내를 말한다.'고 했으므로 비록 이번 위기가 꽤 큰 폭탄이긴 했으나 결국에는 단기적인 경기변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이걸 단순한 통계적인 관점에서만 드러나는 양적인 회복인지, 실질적인 서민 경제가 살아나고 전반적인 국가 산업 자체가 다시 안정을 찾는 질적인 회복까지도 수반하는지는 말이 많다. 당장 회복의 증거로 가장 자주 쓰이는 미국의 고용 지표만 하더라도 통계 데이터를 실제로 분석해보면 새로 창출된 일자리라는게 죄다 알바나 인턴 따위 단기성 비정규직들이다.

 

2. 배경

2008년의 금융위기는 미국 부동산 버블 붕괴와 이에 따른 모기지론의 부실화, 그리고 모기지론의 증권화가 결합되어 발생했다. 여기에 소유는 민간이지만, 미국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이상한 형태의 연방주택금융공사인 페니메이(연방저당권협회)와 프레디 맥(주택담보대출 전문 금융회사, 둘 다 반 공영기업)의 도덕적 해이까지 겹쳐졌다.

일단 모기지 론이란, 우리로 치면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살 때 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돈(대략 집값의 70~80%)을 빌려 산 뒤, 나중에 천천히 이자와 함께 갚을 수 있게 하는 금융상품이다. 그리고 제대로 빚을 갚아나갈 수 있는 경우를 프라임 모기지, 그 아래 수준의 신용을 Alt-A, 상당히 미심쩍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벌어 갚아나갈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낸 모기지를 서브프라임(Sub-Prime) 모기지라고 부른다.

은행은 해당 모기지론을 대출해준 뒤 동일한 만기와 위험을 가진 대출을 모아 유동화 채권(ABS)의 형태로 발행을 한다. 이렇게 발행된 채권은 금융시장에서 기존 회사채나 하이일드 대비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을 통한 판매를 통해 자금을 모집하게 된다. 유동화 채권을 발행시 해당 자산의 담보를 인정하는 기관이 필요한데 해당 기관이 페니메이와 프레디 맥이다. 두 회사는 국가의 대행업무를 하고 있었고 2000년 초반만 해도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알짜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투자자들은 해당 채권의 보증을 국책모기지 회사인 두 회사에서 지게되니 안정적이라는 판단하에 매매를 하게 된다. 즉, 가계의 모기지론을 은행, 채권보증회사, 투자자들이 서로 나눠 먹는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났어야 할 MBS가 투자은행으로 넘어가 파생상품으로 만들어지면서 문제는 커지기 시작한다.

클린턴 정부 시절의 주택정책 '1조 달러 주택금융자금 지원사업'을 시발점으로 미국 주택시장의 버블은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내집마련"을 주택정책 기조로 삼아 온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중산층이 된 증명을 뒷마당이 있는 자기 집을 사고 그 집의 차고에 자기 차를 넣는 것이라 보는 문화가 있는데, 당시 정책의 바탕도 거기에 있었다. 의도는 좋았다.

여기에 2000년대 초부터 시작한 '2조 달러 주택금융자금 지원사업'으로 미국 주택시장 버블은 커지게 되었다. 즉, 클린턴 정권과 부시 정권의 한 가정당 한 주택을 보다 쉽게 갖게 해주겠다는 식의 정책이 주택시장의 붐을 만들었고 주택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은행은 당연히 주택 가격이 오르고 있으니 그 주택을 담보로 잡으면 그 주택 가격의 70% 이하로는 얼마든지 대출해 줄 용의가 있었던 것이다. 은행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특히 선호를 했는데 상환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대출을 하여 자산유동화(ABS)를 할 경우 페니메이와 프레디 맥이 담보를 하고 유통시장에 얼마든지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럴 해저드가 발생하면서 주택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을 보이다가 정체를 보이게 된다. 여기에 민영화 되었지만, 연방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던 페니메이와 프레디 맥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자산유동화를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주택가격 상승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는 100%가 넘는 담보를 잡고 대출해주기도 했다는 전설이 내려올 정도다. 즉, 지금 집의 가치가 40만 달러인데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 전망한 금융기관에서 40만 달러를 대출해주는 식으로 영업했다는 이야기다. 그런 식으로 나중에는 집 자체가 대출의 확실한 담보가 되어 주택담보대출은 지불능력과 무관하게 누구나 받을 수 있었고, 은행은 얼마든지 빌려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니 수요는 더욱 늘어 집값을 밀어올렸다.

S&P/CS CITY 20지수에 따르면 미국내 20여개 대도시는 2007년 1월을 정점으로 부동산 가격은 상승을 멈추고 지속적으로 하락을 보이게 된다. 2007년 중반에는 전년대비 10%의 하락을 보이기 시작을 한다. 이러한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상환이 유예 혹은 파산이 되면서 페니메이와 프레디 맥은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자산의 담보인정을 해당 기관에서 했기 때문에 파산에 따른 영향을 모두 떠 안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페니메이와 프레디 맥은 2008년 7월 국유화되었다.

금융에서 이렇게 호황이 찾아오고 계속 대출을 해 주고는 있었으나 실물시장에서 미국의 성적은 처참했다. 만성적으로 경상수지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성장률도 둔화되어 국민소득의 증가도 잘 늘지 않는 추세였다. 이것이 또 문제를 키우는 시발점이 된다. 금융시장이 아무리 활성화되어 규모가 커진다 하더라도, 실물시장에서 그것을 받아들여 줄 수 없다면 어디까지나 기대심리에 의지해 부풀려지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즉 실물경제의 성장 없는 금융 부문의 확장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탄이라는 것이다. 금융 부문에서 유동성이 계속 양산되며 대출채권이 다시 대출로 이어지는 이러한 순환구조 속에서 주택 가격은 계속 상승하지만, 실물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어 소득의 증가는 거의 정지한 상태이므로 소비증가 또한 둔화되므로 물가 상승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의 닷컴 버블 이후 소프트웨어 시장의 확장 등은 전반적으로 총공급곡선을 더 비스듬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물가는 수요가 상승하는 것에 비해 더 느리게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앨런 그린스펀의 연준은 경기는 호황이지만 물가는 오르지 않으니 정책금리를 올리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정책 금리를 올리지 않았으니 은행도 저리로 계속 자금 대출을 실시한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장대한 후폭풍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미친 짓거리들이었는지는 지금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은행들이 무자산무담보대출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준 건 일도 아니었다. 가장 미친 짓거리는 투자은행들이 모기지 은행들로부터 구입한 ABS(자산유동화)인 MBS(모기지저당증권)를 기초로 CDO(부채담보부증권)라는 ABS를 만들어 팔아먹었고, 이걸 구매한 투자은행들은 또다른 CDO를 만들어 팔아먹었다는 것. 이런 식으로 MBS, CDO-1, CDO-2, CDO-3 등의 파생상품들이 판매됐는데, 문제는 각 단계별 파생상품의 족보가 뒤섞여서 슈퍼컴퓨터로도 리스크 분석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였다는 거다. 여기에 CDO 중 후순위 CDO(현금 지급 순위가 낮은 대신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는 증권)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CDS를 AIG를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다시 투자은행들에 팔아먹었다. 그리고 이는 모두 CDO 시장이 폭락하여 부도가 날 리가 없다라는 근거없는 믿음에 바탕을 둔 투자였다.

 

3. 위기

2007년 9월 금리 인하를 기점으로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난다.

미국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는 2007년 6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에 대한 담보부증권 판매가 부진해 자금난에 시달렸다. 신용악화까지 겹쳐 결국 이듬해 3월 파산하고 말았다. 85년 역사를 가진 세계 5대 IB의 몰락이었다. 이때만 해도 베어스턴스의 파산이 위기의 전조였다는 것을 감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세계 최대 IB인 JP모건 체이스는 베어스턴스의 부실 채권을 헐값에 인수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1년 전만 해도 주당 170달러를 넘던 베어스턴스는 이 당시 주당 고작 10달러에 팔려나갔고, 인수협상이 타결되기 전 주당 30달러에 주식을 샀던 사람들은 다시 30달러까지 회복되는데 11년이 걸렸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대봉쇄로 다시 나락행...

 2008년 9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리먼 브라더스가 베어스턴스와 같은 문제로 파산하고 말았다. 직후 미국 등 글로벌 증시와 채권 값은 폭락했고 AIG·씨티그룹 등 철옹성 같았던 금융회사들도 하나 둘 쓰러졌다. 그렇게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작됐다.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이 분명해지자 메릴린치는 자신들 또한 파국을 맞을 것임을 직시하고 48시간만에 메릴린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로부터 인수된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9월 16일 미국 최대의 금융 보험 회사중 하나인 AIG의 파산을 막기 위해 FED는 막대한 구제금융을 결정하게 된다.

AIG는 MBS 등의 파생상품이 디폴트에 빠질 경우 보상한다는 골자의 CDS를 대량으로 발행했는데 MBS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계속 CDS에 의해 자금이 빠져나갔던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의 주식시장도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워낙에 AIG의 규모가 커서 무너졌다간 바로 큰 대공황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 미 정부는 AIG에 급히 구제금융을 하려 했으나 미 하원은 AIG 임원들의 태도 문제등을 내세워 거부했고 결국 계속된 미 정부의 설득과 상원 선통과라는 과정을 거친 끝에 간신히 통과시킬 수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금융회사 중 하나인 AIG의 파산 소식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미국의 증시는 계속해서 추락하기 시작한다.

 

3.1 파급효과

이후로도 AIG나 다른 서브프라임 관련 회사들이 넘어가기 시작했고 이들의 파생상품을 산 기업들이나 투자자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이때 원 약세 정책으로 키코, 스노우볼 등 환 헷지 파생상품의 피해가 속출한 상황에서 이 사태로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자 코스피 지수가 890 대를 찍는 거의 IMF 구제금융 시절에나 나올 법한 상황을 연출한다. 다른 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는데 러시아에서는 한때 주식 거래가 중단되었으며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 등 금융으로 먹고 살던 국가들은 완전히 국가 부도 상태에 빠졌으며 세계 각지에서 투자 실패로 절망한 투자자들의 자살이 속출했다. 일본도 환헷지의 일종인 엔케리가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해 피를 보면서 덩달아 피를 봤다. 또한 시티그룹을 위기로 몰고갔다.

또한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인 포드, 크라이슬러, 제너럴 모터스도 이 사태로 큰 피를 보면서 정부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2009년, UAE 두바이의 두바이월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투자를 한 이들이 또 피를 봤다.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며 서방 국가들은 남유럽이나 발칸처럼 아예 망했느냐, 어느 정도 쇠퇴로 끝났느냐의 차이뿐 모두 몰락 수순을 밟고 있고 중국 등 주요 신흥국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물론 모든 신흥국들이 그런 건 아니고 몰락한 나라들도 있긴 하지만 이미 성공한 신흥국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

그리고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도덕적 해이가 주목을 끌었는데, 고객들과 직원들은 파산으로 알거지가 되었는데 정작 CEO와 임원들은 보너스 파티를 벌였다는게 알려지면서 분노한 미국 국민들은 니네들도 망해야 정신을 차린다면서 금융 지원을 반대했다. 일본식으로 자살을 하든지 하라며...흠좀무 하원이 괜히 AIG 지원을 거부한 게 아니었다. 이 분위기는 양당을 불문하고 만연했다. 관련 기사 부실한 금융상품을 마구 거래하다 망하게 생기자 정부에 징징대어 구제받더니, 미국 전체가 자기들의 투기 때문에 망하게 생겼는데 자화자찬하며 돈지랄을 하고 앉았으니 욕 먹을 만하다.

이 사태로 부시 뿐 아니라 공화당은 경제 망친 무능한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특히 부동산으로 피를 본 미국의 남부 대도시들에서 이러한 반발이 심했고 결국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주들도 대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2010년 7월 21일 미국 정부는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을 통과시켜 모든 연방 금융감독기관들과 거의 모든 분야의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게 된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은 금융 안정성과 소비자 보호를 크게 향상시켰고, 연준이사회의장 재닛 옐런은 신용도와 경제 성장률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고 크게 금융 회복력을 키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법안 통과 이전부터 개혁을 반대해왔고, 상원에서 3명의 공화당 의원만 찬성하여 필리버스터를 겨우 막을 수 있었으며, 다수의 공화당 의원들은 지속적으로 금융개혁법의 폐지를 시도했다.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일부 조항을 폐지하는데 성공했다.

앞서 나온 보너스 파티로 리버테리안 경향이 강한 미국도 국가 주도의 부의 재분배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빨갱이 때려잡던 미국이 빨갱이가 되는걸 고려한다는거 자체만으로도 미국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짐작할수 있다. 게다가 정부에서 보조금으로 제공한 돈을 회사 고위간부들의 보너스로 제공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일을 일으켜 월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이런 월가의 뻔뻔한 작태에 결국 2011년 9월 17일에 월가 점령 시위가 일어났다. 결국 스티브 잡스의 사망이라는 초대형급 사건에 묻혀 유야무야 자진 해산하기는 하였지만 이미 미국 국민들도 이런 부도덕한 작태에 대해 다 알고있다는 반증이다.

 

4. 평가

이 사태로 사실상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방임 경제는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갈수록 지배적이게 되었으며 다시 케인스주의가 주목받게 되었다.

일부에선 1933년 은행법(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한 빌 클린턴과 민주당이 책임이 있다는 시각이 있는데, 긍정하는 쪽은 문제가 누적되다 조지 W. 부시 정부에 이르러 터진 것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기본적으로 클린턴 행정부 막바지인 1999~2000년에 문제가 된 IT 버블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 저금리 정책을 펼침으로서 시장에 유동성이 지나치게 많이 공급되고, 그로 인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위험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쪽은 클린턴 시절엔 IT산업을 위시한 대 호황기였는데 조지 W. 부시의 삽질들로 경제적 악화가 심화되면서 폭탄이 되어 오히려 같은 법인데도 클린턴 시절엔 별 문제 없던 법이 정작 부시와 공화당 정부의 국가 운영 삽질로 폭탄 법으로 변했다는 소리다. 정말 위험한 법이 만들어진 거라고 쳐도, 그럼 폭탄 법을 없애거나 법 적용에 보다 세밀한 조율을 맞춰서 위험성을 줄이려는 노력도 없이 그냥 내버려 뒀으니 결국 부시의 무능을 증명할 뿐이다. 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미처 예상치 못 한 방향으로 법이 악용되거나, 규제가 미비하다거나 기존 법으로 커버가 불가능한 경우가 나타나서 개인이나 기업이 이익을 얻으려고 이러한 법의 헛점을 악용하거나 편법을 쓰려고 노력하는 사례는 따지고보면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이것을 적절하게 지도하여 문제점을 없애는 것이 바로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이다. 부시 정부는 법이 오랜 기간 시행되면서 부작용에 대해 위험을 지적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므로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미국의 경제정책은 대통령이나 그들이 임명하는 재무장관 뿐 아니라 미국 연방 준비제도이사회의 입김이 상당하며,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해서는 당시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의 책임 역시 막중하다.

그리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전세계적 경제 위기로까지 번져나간 이유는...미국 특유의 '투자 은행'들이, 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한 각종 파생금융상품들을 만들어 전세계 금융기관에 팔아치웠다. 집값으로 친 거미줄 이론상 위험 요소를 분산시키면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위험도는 1/n으로 줄어든다는 점 때문에 사실 좀 위험한데도 팔 수 있다.식으로 팔아제꼈는데, 금융시장이 신뢰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을 쌩무시한 결과...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미납율이 증가하자 관련 파생상품 산 쪽에서 어 저거 위험하네 하고 팔아치우려 드는 바람에 위험도와 공포가 n배로 증가하는 대형사고가 터져버렸다. 결국 연쇄도산이 벌어지고 덕분에 전세계 금융기관들의 돈지갑이 마르고, 복잡해진 금융시장 전체가 경색되는 바람에 경제위기 크리.

여기에 만성적인 대외무역적자에 아프간-이라크 양쪽 전선에 퍼부은 7,300억 달러 규모의 전비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정부재정적자도 무시할 수 없다. 대외무역적자야 하이테크 산업과 서비스 산업으로 퉁친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돈만 잡아먹지 창조하는 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에서 이기면 그에 따른 배당도 크겠지만 그거야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제국주의 시절에나 먹혔던 원리고...지금은 명분을 갖추고 쳐들어가도 내정간섭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서 본전을 뽑을까 말깐데, 아프간은 9.11 테러의 보복을 위해서였으니 그렇다 쳐도, 이라크 전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타국을 침공하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난 추악한 전쟁이었으니 자국민이 외면하고 타국에서 비난하고 돈은 허공에 날리고 군인들은 죽어나고...손해도 이만저만 보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빵꾸가 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금리를 낮춰 돈을 푼 점도 고려해야 할 듯...

다만, 미국의 경제규모와 재정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전체에서 전비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적다. 그리고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의 전쟁은 국가 차원에서 그 전쟁에서 흑자를 내겠다며 근시안적으로 접근한 것은 사실상 없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주도권에서 나오는 이익을 거시적으로 본 것이라 하는 게 맞다. 문제라면 이라크 전쟁은 그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관점에서 봐도 완벽한 삽질이었다는 점이지만.

대한민국의 부동산 트렌드를 바꾸어놓기도 하였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버블7지역에 경기도 신도시가 여럿 포함되는 등 경기도 신도시들이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 금융위기로 거품이 다 빠져버리고 부동산 경향은 이제 직주근접을 내세운 인서울 선호 현상으로 바뀌었다. 안정적이고 떨어질 염려가 없는 물건으로 돌아선 것. 이러한 변화는 2010년대에 서울 부동산 폭등(특히 관악구가 강남 접근성이 좋아서 고평가되기 시작했다.)으로 이어졌고, 구성남, 광명, 하남 같은 서울접경지역들도 인서울 추세의 낙수효과로 덩달아 집값이 올라가버렸다.

주가가 확 떨어지는 등으로 인해 시작된, 한국에서 말 많은 금융권 취업위기의 시발점은 바로 2008년 금융위기라는 것이 정설이다. IMF 구제금융 당시만 해도 공과대학 출신 연구직이 쫓겨나는 현상이 강했고 그에 비해 금융권 취업은 2008 위기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권 무인화 바람과 어우러지는 바람에 금융권 취업 자체가 어려워졌지만 오히려 제조업에서는 외환위기의 반면교사(외환위기 당시 연구개발직을 쫓아내지 않았던 회사는 2008년 금융위기도 거의 다 제대로 견뎌냈다!) 및 해양 플랜트등으로 연구직 인원 늘리기가 대세였다.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이 와버려서 이공계의 선호도는 (치)의예과를 제외하고 가장 높아졌다. 더군다나 2008년 금융위기가 저출산 및 임용고시의 헬게이트화와 맞물려 외환위기 당시 비정상적(몇몇 대학은 최상위권 공대와 비교될 정도였다.)으로 떴던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의 인기도 큰 폭으로 떨어졌었다. 반대로 외환위기 당시 토익 700과 평점 3.0이면 누구나 가던 전문연구요원은 2008 금융위기로 인해 오히려 공대 열풍이 불면서 살인적 경쟁률을 자랑하고 있다. 즉 지금 문과 취업난의 근원이 바로 2008 금융위기인데 10년 이상 지속되는 중이다. 수포자 문제가 부각된 것도 이때부터인데 이전에는 수학 못하면 문과로 가서 취업이 됐으나 이후에는 공대로 가고 싶어도 못가는 현상이 사회문제로 비화되었다. 즉 이과 수능 수요가 적었던 시절에는 잘하던 학생만 이과를 갔지만 이제는 공대 열풍이 불어버려서 수학은 해야겠는데 안 되는 학생이 많아져서 수포자 문제가 더 부각된 것이다.

 

 

 

▶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는 배후가 그렇게 크지가 않아 1편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렇게 국가가 정책을 잘못세우는 것도 그렇고 단순히 현재 낙관적인 기준으로 금융상품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려주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그림이 없어서 그런지 

이번 상식탭에서는 제가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한국의 IMF에 대해서 다음글로 포스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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